[단독] 강릉과학산업진흥원, '규격미달 제품 제안' 의혹에도 계약까지 '돌격'

XR 스튜디오 구축·고도화 용역 사업서
'규격 만족 확인·연동성 검증' 의견 묵살

강릉과학산업진흥원
/강릉과학산업진흥원

(공정경제) 박광하 기자 = 확장현실(XR) 스튜디오를 구축하고, 기존에 구축된 시스템과 연동하는 공공사업에서 규격을 만족하지 못하는 '규격미달 제품'이 제안·납품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입찰 과정에서 규격미달 제품이 제안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지만, 정작 발주기관에서는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해당 기관은 사업을 수주한 기업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관련 자료 공개를 일체 거부했다.

강릉과학산업진흥원(이사장 김홍규 강릉시장, 원장 김남수)이 지난해 10월 공고, 추진한 '메타버스 허브 XR VP(버추얼프로덕션) 스튜디오 구축 및 고도화 용역(조달청 나라장터 입찰공고번호 20231000236)' 사업에서 이 같은 잡음이 최근 불거졌다.

기존 시스템과 연동성 확인 위해 '협상계약' 채택

진흥원은 ▲인-카메라 VFX(ICVFX) 및 MICE 산업 지원을 위한 LED 기반 XR 버추얼 스튜디오 LED 미디어 월 구축 및 스튜디오 장비 납품 설치 ▲기구축 동북권 메타버스 허브 시스템과의 연계 최적화 등을 위해 약 9억7000만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고 해당 사업을 발주했다.

사업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에 따른 '협상에 의한 계약(협상계약)'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 방식은 계약 이행의 전문성, 기술성, 창의성, 긴급성, 안전성 등이 필요할 경우에 채택하는 방식으로, 제안서 평가위원들이 입찰 참가 업체에서 제출한 제안서를 정성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는 게 특징이다.

평가위원회의 정성평가점수(최고 70점)와 사업 담당자의 정량평가점수(최고 20점)를 합친 '기술평가점수(최고 90점)'를 입찰 참가 기업들이 제출한 입찰가를 평가한 '가격평가점수(최고 10점)'와 합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

발주기관은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을 진행하고, 협상 완료 시 사업수행계약을 체결한다. 만약, 협상이 결렬될 때는 발주기관이 차순위 협상적격자와 협상을 진행하는 구조다.

협상계약 방식은 제안서 평가가 가장 큰 배점을 갖고 있는 만큼 여기서 승패가 나뉘곤 한다. 만약, 사업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미흡한 규격미달 제품이 제안되는 경우에는 제안서 평가에서 걸러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서는 특정 기업이 규격미달 제품을 제안했는데도 제안서 평가 단계에서 높은 평가 점수를 받고 사업까지 수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선행 사업 통해 구축된 시스템과의 연동'에 방점

해당 사업의 제안요청서(RFP)를 살펴보면, 진흥원은 선행 사업을 통해 구축된 시스템과의 연동을 중요 사항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행 사업의 결과물이 기구축 시스템과 제대로 연동되지 않을 경우에는 XR 인프라를 통합 운영, 제어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RFP의 장비별 상세규격서에서 제시한 미디어서버 규격. 조달청
해당 사업 RFP의 장비별 상세규격서에서 제시한 미디어서버 규격. /조달청

진흥원은 RFP의 장비별 상세규격서를 통해, 메타버스 허브 인프라 연계 고도화를 위한 '미디어서버(Media Server)'는 LED 월이나 기존 카메라 트래킹(Camera Tracking)시스템과 연동해 XR콘텐츠 제작을 지원할 수 있도록 ▲언리얼 엔진 네이티브(Unreal Engine Native) 기반으로 모든 가상 스튜디오 및 증강 현실 그래픽 요소를 동일한 설계 소프트웨어로 설계 ▲언리얼 엔진에 'GPU Direct for Video' 구현 가능 ▲비디오 월을 활용해 가상 스튜디오를 확장/생성 가능 등의 규격을 제시했다.

진흥원이 앞서 구축해 운영 중인 시스템에서 언리얼 엔진으로 작동되는 3D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는 만큼, 해당 사업 또한 기구축 시스템과의 원활한 연동을 위해 언리얼 엔진 기반이어야 한다는 점을 요구한 것으로 분석된다.

'4채널 레코더&플레이어(4Ch Recoder & Player)'는 LED 기반 XR 콘텐츠 및 MICE 중계를 위한 소스 영상 및 PGM 영상을 녹화, 재생할 수 있도록 ▲MXF 등 다양한 확장자 입출력 지원 ▲다양한 물리적 인터페이스(Interface) 입출력 지원 ▲오디오 믹싱, 16채널 음성처리 지원 ▲기구축 올인원(All In One) 제작서버 및 MAM, 중계서버와 연계운영 지원 등을 규격으로 제시했다.

메타버스 허브 XR VP 스튜디오 구축을 위한 'LED 볼륨 시스템(Volume System)'의 LED 스크린 규격으로는 ▲LED 타입 SMD (4 in 1) ▲밝기 1500cd/㎡ ▲화면 재생률(Refresh Rate) 7680Hz 이상 ▲해상도 4224 x 1728 픽셀 이상 ▲시야각(H/V) 160°/140° ▲LED 픽셀 간격 2.6mm 이하 ▲전자파적합인증(KC 인증) 제품 등을 요구했다.

이 같은 규격을 조달청 나라장터에 사전 공개했던 당시에는 규격을 수정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상 미디어 인프라 제조기업 관계자는 "제안요청서 사전 공개 절차에서는 ▲특허 등 과도한 기술을 요구하는 규격이나 ▲특정 제품에게만 우호적인 규격 등 이른바 '특정 규격'을 수정하라는 의견이 제시되는 게 보통이다. 해당 사업의 사전 공개 단계에서 별다른 수정 의견이 없었다는 것은 규격 자체에는 문제될 게 없다고 업계에서 판단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인 '공공기관 방송장비 구축·운영 지침'에 따르면, 수요기관은 사전 공개 결과 사업자 등으로부터 의견이 있을 때에는 방송장비 구축 사업별로 제안요청서 초안, 사업참여 희망자의 의견 등을 반영해 제안요청서를 확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제안요청서 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해야 한다. 다만, 사전 공개 결과 사업자 등의 의견을 수요기관이 수용해 제안요청서에 반영한 경우에는 제안요청서 심의위원회 구성·운영을 생략할 수 있다.

제보자들 "규격미달 제품들 무더기로 제안돼"

그런데, 해당 사업의 제안서 평가 당시 특정 기업이 규격미달 제품들을 제안했다는 의혹이 최근 구체적으로 불거졌다.

제안서 평가에는 T와 D 등 2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T의 제안서에 담긴 제안 제품들이 RFP의 요구 규격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의혹의 주된 내용이다.

제보자들은 "국내 XR 산업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업계에서는 어떤 사업에 누가 참여했고, 이들이 어떤 제품을 제안했으며, 결국 어떤 제품이 납품됐는지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사업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진행됐다는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꺼냈다.

먼저, T가 제안서 평가 당시 언리얼 엔진을 지원하지 못하는 미디어 서버를 제안했다는 의혹이다.

다수의 제보자는 "선행 사업을 통해 구축돼 운영 중인 시스템이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3D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만큼, RFP에서도 이 같은 점을 근거로 미디어 서버가 언리얼 엔진 네이티브로 작동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하지만 T사가 제안서 평가 당시 제안한 제품은 언리얼 엔진을 지원하지 못하는 제품이라는 말이 업계에서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여러 XR 구축 공공사업에서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던 전문가는 통화에서 "해당 사업 제안서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던 평가위원 중 여럿은 XR 전문가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T가 무슨 제품을 제안했는지 즉석에서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공공사업들에서 전문가들로 평가위원이 구성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평가위원회 구성 절차를 다시 진행하기도 하는데, 해당 사업은 그런 게 없었다"라고 말했다.

T사가 제안한 4채널 레코더&플레이어가 규격을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이라는 의혹도 뒤따랐다.

이에 대해 영상장비 인프라 설계 전문가는 "업계에 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T가 제안한 제품은 MXF 확장자 등으로의 레코딩 기능이 없다. 그런 제품을 레코더라고 제안했다면 제안서 평가 당시 낙제점을 받았어야 했다"고 의견을 냈다.

MXF는 오디오, 비디오, 메타데이터를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업계 표준 규격으로, 촬영, 편집, 전송을 위해 프로페셔널 비디오 제작에 사용되는 컨테이너 형식이다. 소니, 캐논, 파나소닉 등 다양한 프로페셔널 카메라로 레코딩을 할 때 쓰이고 있으며, 방송 송출, 테이프리스 아카이빙, 포스트 프로덕션 등에서도 채택되고 있다.

이밖에도, "다른 공공사업에서 이 같은 수준의 규격미달 제품 제안이 이뤄지면 해당 제품을 제안한 기업에게 현저하게 낮은 점수를 주는 '낙제 처리'를 하거나, 아예 제안서 평가를 다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T가 제안한 LED 스크린 제품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RFP에서는 LED 스크린이 적·녹·청·백색(Red, Green, Blue, White) 등 4가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SMD로 만들어진 4 in 1 LED 패키지 타입 제품일 것과 제품 운용 시 전자파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KC 인증 제품일 것 등을 요구했다. 4 in 1 SMD 제품은 내구성이 좋아 XR 스튜디오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제보자들은 T가 적·녹·청색(Red, Green, Blue)으로 구성된 3 in 1 SMD 방식 LED 타입 제품을 제안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아울러, 해당 제품은 제안서 평가 당시 KC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이었다는 설명도 내왔다.

"규격미달 제품 여부 확인 요청, 진흥원이 거부"

해당 사업에 관련된 의혹은 제안서 평가 당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평가에 참여했던 평가위원들 사이에서 제안 제품들의 규격만족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던 것이다.

공정경제가 입수한 평가위원들의 제안서 평가 자료에 따르면, 한 평가위원은 T사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면서 "기존 시스템(미디어 서버)과의 연동 검증이 필요하다"는 평가 의견을 진흥원에 제시했다.

제안서 평가 시 이 같은 의견이 제시될 경우에는 발주기관에서 이를 검증할 책임이 있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하지만, 발주기관인 진흥원에서는 T와 사업수행계약을 체결할 때까지 별도 검증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진흥원이 계약 체결을 위해 앞만 보고 '돌격'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제안서 평가 이후에도 제안장비 규격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진흥원에 전달됐지만, 진흥원은 이 같은 요청에 대해 '제안서 공개 불가'를 이유로 거부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규격미달 제품 제안 사실 확인 요청을 정보공개청구로 잘못 이해하고 거절한 것이다. 제보자들은 진흥원이 요청 내용을 짐짓 잘못 이해한 척을 하면서 요청을 묵살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제보자들과 업계 전문가들은 "진흥원이 계약 체결 전 제안 제품의 규격 충족 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엔 제안서 평가를 재실시하거나 차순위자와 협상을 개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진흥원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진흥원 사업 담당자는 "입찰 참가 업체들이 동급 이상의 제품과 규격으로 사업 수행 및 규격서에 만족하는 솔루션을 제안했다. 공개모집과 추첨으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적합 평가를 내린 솔루션"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진흥원은 해당 사업에서 제안서 평가 시 어떤 제품이 제안됐는지 정보를 공개해달라는 공정경제의 요청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1항 7호에 의해 제안사가 비공개를 요청했다"는 이유를 들며 거부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법인·단체 또는 개인(법인등)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

제품을 얼마에 납품하는지를 알 수 있는 제안가를 비공개하고 제안 제품의 모델을 알려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진흥원은 어떤 제품이 제안됐는지가 공개되면 그 자체로 기업들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제보자들은 "진흥원이 제안서 평가 당시 어떤 제품들이 제안됐는지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뻔하다. 규격미달 제품이 제안된 게 사실이고, 이를 공개하면 진흥원이 규격미달 제품 제안사와 계약 체결을 무리하게 추진한 잘못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흥원은 이제라도 사업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릉시의회에서 진흥원에 대한 행정사무감사가 최근 진행 중으로, 시의회는 진흥원에게 해당 사업 관련 정보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론보도] <[단독]강릉과학산업진홍원, '규격미달 제품 제안' 의혹에도 계약 까지 '돌격'> 기사 관련

본보는 지난 6월 24일자 <[단독] 강릉과학산업진홍원, '규격미달 제품 제안' 의혹에도 계약까지 '돌격'>이라는 제목으로 강릉과학산업진흥원(진흥원)이 지난해 10월 공고, 추진한 '메타버스 허브 XR VP 스튜디오 구축 및 고도화 용역' 사업에서 규격미달 제품이 제안됐는데도 진흥원 제안서 평가 단계에서 높은 평가 점수를 받고, 계약까지 진행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진흥원은 "해당 사업에서 낙찰된 T사가 제안한 제품은 제안서 발표 평가 당시부터 호환성과 최신버전, 수량까지 규격 이상의 제품을 제안했다"며 "제안서 평가위원은 XR 전문가를 포함해 방송통신기술분야 전문가로 구성됐으며, 규격 미달에 관한 의견을 제시한 평가위원은 없었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진흥원은 "기자가 요청한 정보에 대해 각 기업으로부터 공개 동의를 받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2026 공정경제. All rights reserved.

이 기사, 어떠셨나요?

한 번 클릭해 감정을 남겨주세요. 다시 누르면 취소돼요.

0명이 감정을 남겼어요

0개의 댓글

아직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 7일 내 발행된 기사가 없습니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