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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기고] 경쟁당국에 필요한 덕목은 '신중함'이다

앤드루 퍼거슨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

앤드루 퍼거슨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
앤드루 퍼거슨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요람이자 상업 자본주의가 태어난 곳이다. 13~14세기 피렌체 사람들은 복식부기와 해상보험, 지주회사, 환어음을 만들어 냈고 프랑스와 런던까지 뻗은 국제 금융망을 일궜다. 그러나 새로 생긴 부와 권력은 민심의 반발을 불렀다. 수도사 사보나롤라는 부를 쌓는 일이 아니라 그 혜택을 공동체와 나누지 않는 엘리트를 꾸짖었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었다. 백성은 억압받지 않기를 바라고 엘리트는 지배하려 하니, 통치자는 엘리트가 아니라 백성과 손잡아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교훈은 오늘의 경쟁법 집행에도 들어맞는다. 경쟁당국은 시장 참여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하지만 그 역할은 반경쟁적 행위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데 그친다. 규제 대상 기업의 이익을 지켜 주는 것이 우리 일이 아니듯, 우리의 이념이나 정파적 선호에 맞춰 시장을 설계하는 것도 우리 일이 아니다. 경영진의 판단에 기대는 좁은 시각도, 회의실에서 경제를 계획하려는 과도한 시각도 모두 '엘리트주의'의 유혹이다. 우리는 절제된 정부라는 미국 건국자들의 '민중적' 비전을 따라야 한다.

그러려면 신중함을 새겨야 한다. 소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는 최선의 수단을 가려내고 고르고 실행하는 고전적 덕목을 말한다. 경쟁법의 목적은 나라와 시민의 번영이다. 우리가 자유롭고 공정하며 경쟁적인 시장을 지키려는 것은 그런 체제가 노동자와 상인, 농민과 은행가 모두를 생산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유기업 체제는 역사상 가장 강한 경제와 가장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을 가난에서 건져 냈다. 그러나 이윤 추구는 공동선을 이루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이윤 추구가 생산과 혁신, 경쟁을 북돋우지 못하면 규율해야 한다. 독점금지법과 소비자보호법은 그런 도덕적 절제의 한 형태다. 자유시장의 수호성인처럼 여겨지는 애덤 스미스도 독점을 공동선의 적으로 봤다. 그의 해법은 이윤 추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독점된 산업에서 이윤을 좇는 사람과 기업의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기업결합을 조사해 경쟁을 실질적으로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경쟁당국은 비켜서면 된다. 그러나 중요한 사건일수록 그리 단순하지 않다. 친경쟁 효과와 반경쟁 효과가 섞여 있으면 둘을 떼어 낼 수 있는지, 시정조치가 소송에서 이긴 것과 같은 수준으로 경쟁을 지킬 수 있는지,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과 졌을 때의 결과는 어떤지 함께 따져야 한다.

신중함이 가장 필요한 곳이 수직결합이다. 경쟁자끼리 합치는 수평결합과 달리, 공급망의 서로 다른 단계에 있는 기업이 합치는 수직결합은 위협이 미묘하다. 결합 기업이 경쟁사의 원재료 조달을 막거나 비용을 올릴 수 있고, 경쟁사의 민감한 정보를 손에 넣어 투자 의욕을 꺾을 수도 있다. 동시에 이중 마진을 없애고 거래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효율성도 거의 모든 수직결합에서 나타난다.

이럴 때는 적절히 설계된 행태적 시정조치를 담은 합의가 최선일 수 있다. 단기 우려는 크지만 장기 이익이 분명한 결합을 막으면 사회는 그 이익을 잃는다. 현실도 봐야 한다. 미국 경쟁당국은 1980년부터 2017년까지 수직결합 사건을 한 건도 재판에 가져가지 않았고, 2017년 이후 다섯 건을 소송해 한 건을 빼고 모두 졌다. 법원은 기업이 스스로 내놓은 행태적 약속을 우려를 덜어 주는 중요한 증거로 봤다.

물론 행태적 조치는 만능이 아니다. 어떤 결합은 소송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막아야 한다. 나쁜 거래를 덮는 땜질 처방에 빠지기 쉽고, 경쟁당국이 경제 전체의 경쟁 대신 개별 기업을 끝없이 감시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 행정부처럼 시정조치를 일률적으로 거부하면 거래를 막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지만 남아, 합의로 고칠 수 있었던 반경쟁적 결합이 예산의 한계 속에 그대로 살아남는다. 차별 금지나 정보 차단벽 같은 전통적 조치에 더해, 분쟁을 결합 기업의 비용으로 중재하게 하거나 위반을 제보하는 고객을 보호하고 공급처를 바꾸려는 고객을 돕게 하는 조항도 생각할 수 있다.

신중한 집행은 경험과 여건, 예상 결과를 바탕으로 수단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데서 나온다. 경직되고 팽창적인 역할관은 법과 판례, 시장의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겸손하게 바라보는 '민중적' 관점이 경쟁당국을 더 신중하게, 그리고 더 성공적으로 만든다.

출처 :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국제변호사협회(IBA) 경쟁법 회의 연설(2026. 9. 5., 이탈리아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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