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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모든 주택은 그에 걸맞은 유지보수를 한다

박광하 공정경제 기자.
박광하 공정경제 기자.

(공정경제) 박광하 기자 = "모든 국가는 그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이 말은 사르데냐 왕국 대사로 러시아 제국에서 활동했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1811년 러시아 헌법 제정을 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은 수준의 정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구성원들의 수준이 낮아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 장기적으로 정부의 수준 또한 하락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공동주택에 설치된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 의무화 제도 신설, 운영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다 보니 새삼스럽게 위 발언이 떠올랐다. 이 제도에 대한 반발은 정보통신설비가 이제는 시민들의 안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전문적인 설비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중요성을 모르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결국 모든 주택은 그 수준에 걸맞은 유지보수를 하게 되는 셈이다.

건축물 등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관련된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를 의무화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정보통신공사업법이 7월 19일자로 시행됐다. 개정 공사업법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건축물·시설물 등에 설치된 정보통신설비의 유지보수·관리 및 점검을 위해 필요한 기준을 정해 고시해야 한다. 또한, 유지보수 기준의 내용, 방법, 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과기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더불어, 정보통신설비의 소유자나 관리자인 '관리주체'는 과기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관리자를 선임해야 하고, 정보통신공사업자에게 정보통신설비의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

다만, 공사업법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 등에 설치된 정보통신설비의 관리주체는 유지보수·관리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이와 관련된 대통령령인 공사업법 시행령 내용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못했다.

법은 있는데 하위법령이 없어 제도 시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공사업법 하위법령 마련과 시행 지연 문제에 대해서는 공동주택 관련 기관, 단체, 당사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 제도 시행을 반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 예로, 대한주택관리사협회(대주관, 협회장 하원선)는 공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자 선임과 성능점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중복 법령'이자 '이중 규제'라고 반대했다. 대주관은 공동주택의 경우 지난 5월 22일 개정·시행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안전관리계획 수립 대상에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를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주관의 주장대로, 지능형 홈네트워크 관련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시설물별로 안전관리자·안전관리책임자를 지정해 이를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구축 설비의 일상적인 안전관리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유지보수, 점검은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설비는 상시 안전관리를 해야 하지만, 노후화 등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기술자 등에 의해 유지보수나 점검이 필요한 것이다.

ICT 비전문가인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할 수 있는 정보통신설비 안전관리란 설비를 구성하는 장치들의 전원 인가 및 작동 상태 확인, 화재나 감전을 예방하기 위한 설비 외관 확인 및 간단한 청소, 설비의 물리적 도난이나 파손을 방지하는 시건장치 상태 관리 등일 것이다.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관리소 직원들이 ▲홈네트워크장비와 홈네트워크용기기의 인프라 역할을 하는 홈네트워크의 설계 및 고도화 ▲새롭게 등장하는 네트워크 프로토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이슈에 따른 홈네트워크 설정 업데이트 ▲신종 보안 취약점에 대응할 홈네트워크 서버, 단말, 네트워크 분야별 정보보호·개인정보보호 정책 설정 및 운영 ▲홈네트워크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소프트웨어(SW)·하드웨어(HW)적 트러블슈팅 등을 자체적으로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공동주택관리법상 의무관리대상인 공동주택 시설물의 안전관리계획에는 발전 및 변전시설, 소방시설, 승강기 등이 포함돼 있고, 이들 설비에 대해서는 안전관리계획 수립 및 시행과 별도로 '전기안전관리법',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따라 전문기관이나 전문성을 가진 기술자 및 기업이 정기적으로 유지보수나 점검을 하고 있음을 생각해보자.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결론적으로 ICT 전문가가 홈네트워크 등 공동주택의 정보통신설비에 대해 유지보수, 점검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밖에도, 대주관의 주장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눈에 띈다.

CCTV설비 등은 전기시설 중 약전설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디지털화, IP네트워크화되고 있는 CCTV설비를 전기시설이라고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전력을 공급받는 모든 장치가 전기시설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전력을 공급받는 다양한 전자적 정보통신 제품들은 모조리 전기시설로 취급 받게 된다. 스마트폰도 전기시설, 이동통신망 기지국도 전기시설, TV도 전기시설, 세탁기도 전기시설, 전기차도 전기시설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재와 관련된 비상방송설비 등을 소방시설이라고 간주하는 것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공동주택에 설치되는 구내방송장치는 평시에는 안내 방송을, 화재 등 비상시에는 비상방송을 송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음성 데이터를 입·출력하는 정보통신설비이지만 상황별 용도에 따라 비상방송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구내방송장치를 비상방송 겸용설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내방송장치가 소방설비라고 한다면, 구내방송장치를 구성하는 스피커, 앰프 등의 음향장치마저 소방설비가 된다는 이상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스피커와 앰프가 공연시설 등에 설치되면 음향장치인 정보통신설비지만, 아파트에 설치되면 소방시설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대주관의 이 같은 주장에는 정보통신설비의 개념이나 ICT 산업이 발전하지 못해 고도화, 세분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수십년전 산업 체계나 제도가 바탕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진 낙후된 부분은 빨리 개정해 이런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하겠다.

혹시, 비슷한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이 중복되는 문제가 있다면 정부와 국회에서 교통정리를 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오피스텔이나 시설물 등 공동주택관리법에서 다루지 못하는 곳들의 정보통신설비 사이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유지보수 제도 시행이 가급적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 같은 요구에 부응헤야 할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공동주택 관리비 상승 반대를 이유로 지능형 홈네트워크 등 정보통신설비의 유지보수가 장기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다. 이는 사이버 안전 확보보다는 공동주택 관리비의 추가적인 인상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원인일 터다.

그런데, 그동안 벌어졌던 많은 안전사고 중 다수 사례의 원인은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조치를 생략하거나 소홀히 한 것이었다.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 제도가 내실 있게 추진되지 못한다면, 지난 2021년 10월에 발생했던 동시다발적인 아파트 입주세대 해킹 사건과 같은 사이버 안전 위협 사건이 또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공동주택을 포함한 건축물·시설물 내 정보통신설비 유지보수 제도가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목적에서 마련되는 것임을 우리 사회가 이해하고, 이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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