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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감리업체-심사위원, 입찰 담합으로 거둔 불법 수익 나누다 덜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공공건물 입찰 담합·금품수수 사건 수사결과 발표
담합 감리업체 17곳·뇌물수수 심사위원 18명 기소

검찰
/검찰

(공정경제) 박광하 기자 = 감리업체들이 종합심사낙찰제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여러 공공사업에서 담합을 저지르고, 이 같은 담합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심사위원들에게 뇌물을 바치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공공 발주 감리입찰의 용역대금은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마련되는 것인 만큼, 범행을 저지른 감리업체들은 용역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뇌물을 주고, 수주한 용역으로 다시 비자금을 만드는 구조적 범행을 저질러 국가재정에 큰 손실을 끼친 것이다.

아울러, 공공건설 분야 입찰은 아파트, 병원, 연구소 등 대규모 주택이나 공공 시설물을 대상으로 이뤄지므로, 담합행위가 이뤄지는 경우 국가재정이 누수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감리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검찰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정부, 발주처 등 유관기관과 협의를 개최해 이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김용식)는 양주, 화성, 울산 등 전국 각지에 소재한 공공·임대아파트 및 병원, 경찰서 등 주요 공공건물의 감리 입찰에서 담합을 하고, 낙찰예정 업체가 용역을 수주받을 수 있도록 심사위원들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사건을 수사해 68명을 기소(구속 7명)하고, 뇌물액 합계 6억5000만 원 상당에 대한 추징보전 조치를 완료했다고 최근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에 가담한 감리업체들이 지난 2019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공공 발주 감리 입찰에서 '용역나눠 갖기' 등으로 총 94건, 낙찰금액 합계 약 5740억 원 규모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법인 17개사, 개인 19명을 입찰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또한, 교수, 공무원 등 입찰 심사위원들이 2020년 1월~2022년 12월 업체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달라는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행위에 대해 심사위원 18명(구속 6명), 감리업체 임직원 20명(구속 1명)을 특가법위반(뇌물) 등으로 기소했다.

검찰은 카르텔 형벌감면제도(리니언시)를 통해 공정위 고발 전 신속하고 집중적인 수사를 진행함으로써 감리업체들의 담합행위뿐만 아니라 감리 업체와 심사위원 사이의 금전적 유착관계를 낱낱이 규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검찰에 따르면, 수사 초기 감리업체들은 담합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담합 실행 방식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에 검찰은 약 1만2000개에 달하는 통화녹음파일을 분석하고, 다량의 압수물을 검토해 '인사비 정산자료'와 같은 담합행위의 핵심 증거를 확보하는 등 끈질긴 수사 결과 감리 입찰 전반에 만연한 금품수수 등 구조적 비리를 규명할 수 있었다.

감리업체들은 2019년 종합심사낙찰제가 시행되자 제도의 취지에 반해 기술경쟁 없이 안정적인 이익 창출을 위해 담합을 하고, 돈으로 높은 점수를 얻어 용역을 낙찰받았으며, 심사위원들은 이에 편승해 상당한 금품을 수수했다. 종합심사낙찰제란 입찰 심사에서 가격보다 기술력 위주로 평가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법이다.

결국 국가재정으로 마련된 공공·임대아파트나 병원, 경찰서 등 공공건물의 건축비용이 불법적 로비자금으로 이용됐고, 그 결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감리의 부실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검찰은 지적했다.

검찰은 "향후 동종 범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등 3개 유관기관과 협의회를 개최해, 현행 입찰제도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다양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향후 피고인들에 대해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철저히 공소를 유지하고, 적극적인 몰수·추징을 통해 불법 이익을 완전히 박탈해 부정부패 범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범죄자들로 하여금 부당한 공동행위, 금품수수 관행의 결과가 '이득이 아닌 철저한 손해'라는 것을 인식시키도록 하겠다"면서 "자유시장 경쟁체제를 잠탈하고 공정거래질서를 저해하는 카르텔 범죄에 대해 상시 감시하고 엄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겠다"고 전했다.

조직적·체계적 로비 수행할 정교한 생태계 구축

수사 결과에 따르면, 감리업체가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비와 금품 제공 범행은 조직적이면서 단계별로 이뤄졌다. 일종의 정교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 생태계는 4단계로 구성됐다.

1단계인 '평시홍보'에서 감리업체는 심사위원 명단인 풀(Pool)을 기준으로 지연, 학연, 근무연 등 고려한 전사적 영업배분을 수행했다. 이후, 심사위원 풀에 등록된 자들을 대상으로 경조사 챙기기, 상품권 제공, 술, 골프 접대 등의 금품·향응 제공으로 밀착 영업·관리를 했다.

1단계를 통해 심사위원 풀 등록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은 이후 감리업체는 2단계인 '특정용역 청탁'에 들어갔다. 로비를 받은 심사위원 풀 등록자가 특정업체의 제안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업체별 상징 문구인 '표식' 등을 활용해 블라인드 평가를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A사는 제안서에 '마스터키(Master Key)'라는 표식을 사용, 청탁을 받은 심사위원 풀 등록자가 해당 제안서가 A의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하모니(Harmony)', '플러스 알파(+α), '비전(Vision)', '불만제로' 등 업체별로 표식은 다양했다.

3단계에서는 '금품 선지급 및 사후지급 약속'이 이뤄졌다. 감리업체는 심사위원 선정 당일 전국에 지역 단위로 영업사원을 배치한 다음, 선정된 심사위원에게 텔레그램이나 공중전화로 연락해 청탁을 했다. 또한, 청탁을 수락하는 대가로 즉시 금품을 지급(선배팅)하거나 사후 지급을 약속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한 이후에는 마지막 단계인 '최종정산'이 이뤄졌다. 청탁업체에 최고점을 주는 심사위원이나 경쟁업체에 최하점을 주는 '폭탄' 청탁을 들어준 심사위원에게 금품을 지급했다.

검찰은 '폭탄'이 경쟁 컨소시엄에게 최하위 점수를 주는 것을 의미하는바, 심사위원이 경쟁 컨소시엄에게 '폭탄'을 줄 경우 청탁을 한 업체가 낙찰받을 확률이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사 결과, 청탁을 받은 심사위원이 심사에서 청탁업체에게 최고점을 주는 경우 3000만 원, 경쟁업체에게 최하점을 줄 경우 2000만 원의 대가를 받는 시세가 형성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이 같은 청탁에 소요된 금품인 '인사비'는 사업에 선정된 컨소시엄 업체 지분 비율에 따라 현금 정산이 이뤄졌다.

감리업체들, 입찰 담합해 세금 흡혈 능력 극대화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주요 감리업체들 주도로 기술 경쟁을 회피하고 발주물량을 나눠갖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정한 경쟁은 이뤄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세금이 부당하게 과다 지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3월 최저가 낙찰로 인한 품질저하 등 폐해를 막고 기술 중심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9년 1월 일부 업체에 낙찰이 편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위업체 간 컨소시엄 구성을 제한한 바 있다.

이에, 주요 감리업체들은 종합심사낙찰제 도입으로 심사위원의 정성평가 비중이 늘어나자 LH에서 공지한 '연간발주계획'을 기준으로 낙찰받을 업체를 지정해 나누고, 서로 들러리를 서주는 등의 방법으로 담합을 시작했다.

수사 결과, LH의 2020년 '연간발주계획' 중 약 70%를 담합에 관여한 감리업체들이 나눠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국가재정을 원천으로 하는 '비자금조성-뇌물-낙찰'이란 끔찍한 악순환 구조가 갖춰졌다.

검찰은 감리업체들이 LH 전관들을 채용한 다음 이들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군사작전을 하듯이 일사불란하게 심사위원들에게 고액의 현금을 '인사비' 명목으로 지급해 공정이 생명인 공공 입찰심사 점수를 흥정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감리업체들은 고액의 뇌물 비자금을 조성해야 하므로 감리 현장에 충분한 자금을 투입할 수 없게 되고, 기술력이 없는 업체들도 뇌물을 통해 용역을 낙찰받음으로써 전반적인 현장 감리부실 및 안전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2023년 4월 인천 검단 자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사고 모두 이 사건 수사 대상 감리업체들이 관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음성적·조직적 금품 제공에 의한 불법적인 부(富)의 축적이 이뤄졌다는 점도 언급했다.

감리업체들은 텔레그램 등 증거인멸이 쉬운 메신저 어플을 사용하고, '정산표' 등 범행과 관련된 문건들은 즉시 폐기했으며, 심사위원 선정일에는 청탁 및 금품 교부를 위해 전국에 영업담당자들을 배치하는 등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또한, 감리업체들은 금품을 건네줄 때는 반드시 심사위원을 직접 만나 현금으로만 제공했고, 심사위원들은 감리업체와 불법을 공유하는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재정을 심사위원의 부정축재에 이용했다.

심지어, 일부 심사위원들은 업체끼리 경쟁을 붙여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게 하거나(레이스), 경쟁업체에 꼴찌 점수를 주고 웃돈을 받거나(폭탄), 여러 업체로부터 동시에 돈을 받는(양손잡이)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검찰, 범죄 재발 차단할 제도 개선방안 마련 나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업체 간 건설적인 경쟁을 유도해 기술력 향상을 도모하고 일률적인 저가 낙찰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종합심사낙찰제도'가 오히려 심사위원에 대한 금품로비에 악용되는 실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감리업체들은 상향된 낙찰금액을 로비 활동에 활용하고, 상위업체 간 컨소시엄이 제한되자 입찰담합으로 대응했으며, 심사의 공정을 제고하기 위해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자 이를 통해 전방위적인 로비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정책입안 부서, 발주청 등 유관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감리업계에 만연한 로비실태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관기관 협의회를 개최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7월 국토부, 조달청, LH 관계자들과 유관기관 협의회를 개최해 현행 종합심사낙찰제도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선방안을 협의했다.

먼저, 입찰 심사에서 정성평가 비율을 높여 심사위원들에게 권한이 집중된 결과, 심사위원 로비에 대한 강력한 유인이 발생한 데 대해서는 종합심사낙찰제도 대상 용역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스스로를 심사위원으로 추천하는 게 가능한 '자천(自薦)'을 허용한 결과, 심사위원 풀에 로비를 받고자 하는 심사위원의 비율이 높아진 점에 대해서는 심사위원 풀 선정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심사위원 검증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정 용역에 선정된 심사위원 명단을 미리 발표함으로써 입찰업체들로 하여금 로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용역 선정 심사위원 명단을 비공개하기로 정했다.

발주처의 지침이나 사업 입찰 공고문 등에 심사위원-입찰업체 간 사전접촉 금지, 법 위반 시 제재사항 등의 사전 공지가 없거나 불명확한 경우에는 사전접촉 금지, 법 위반 시 제재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감리업체와 심사위원에 대한 사전 청렴 교육이 미흡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실질적이고 충분한 사전 청렴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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